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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 지젤( 김주원 이영철)  
 
송종건  
 
2012-04-11  
 
< 국립발레단 - 지젤( 김주원 이영철) >


클래식발레의 표현이 최 극한의 완성도를 이루면, 우리 고유의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살아난다. 사실 발레는 서양에서 건너온 예술이 맞다. 하지만 이 발레가 최고의 기량과 표현으로 들어서면, 우리 ‘고유’의 발레가 되고, 오직 우리만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들만의 경지’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결코 다른 나라 발레예술가들이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뉘앙스를 이루는 ‘한국 고유의 발레’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에서 확인된다. 피겨도 서양에서 온 스포츠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세계적인 기량으로 우리만의 표현의 아름다움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김연아 움직임의 품위 있는 느낌과 뉘앙스를 결코 피겨 강국이라는 일본이나 러시아 등의 피겨선수들이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피겨스케이팅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는 우리 고유의 ‘국가정체성’이 보인다.


지난 3월 1일부터 4일까지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다. 4일 동안 네 커플 주역의 5회의 공연이 있었는데, 평자는 공연기간 동안 오페라하우스를 ‘출퇴근’하면서, 네 커플 주역의 4회의 공연을 보았다. 이번 평론은 세 번째 날 첫 번째 공연으로 이루어진 국립발레단의 노련한 주역 김주원과 이영철 커플의 공연에 대해 쓴다. 그리고 나머지 3커플의 공연도 그 예술적 완성도가 너무 높아 앞으로 기회가 되면 계속 써 나갈 예정이다.


아름다운 움직임과 음악, 그리고 무대장치와 마임 등으로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귀족 청년과 평민 소녀 사이의 사랑이 화사하게 그려지며 시작되던 이날 공연은, 또 다시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공연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시골 마을 처녀 총각들의 상쾌한 움직임이 이루어진 다음, 지젤에게 사랑에 빠진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이영철)가 지젤의 집 문을 가만히 두드리자 지젤(김주원)이 나타난다. 둘이가 맑은 움직임을 이룬 다음,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꽃 점’을 본다.


좋지 않은 결과에 실망한 지젤의 뒤에서 알브레히트가 재빠르게 결과를 바꾸고, 함께 행복한 움직임에 빠져들고 있다. 이때 지젤을 짝사랑하고 있는 시골 청녀 힐라리온(송정빈)이 나타나 두 사람을 떼어 놓고, 알브레히트와 격한 다툼에 빠진다. 다시 동네 청년들이 들어서서 함께 상큼한 군무를 이룬다. 남녀 세 쌍의 군무들이 원을 그리며 이루는 움직임의 안무는 입체적이다. 바로 이런 창의적 안무 패턴 하나하나가 파트리스 바르 재안무의 ‘지젤’을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팡파르 소리 들리고 사냥을 다녀오는 귀족들이 시골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고풍어린 의상의 귀족들이 들어서자 무대는 이제 한 폭의 파스텔 톤의 서양 고전 그림이 된다. 김리회 김윤식 커플이 이루는 패전트 파드되가 이루어진다. 김윤식의 공중회전 움직임은 힘차고 명쾌하다. 김리회도 솔로 움직임에서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귀족들이 떠난 다음 다시 시골 청년들의 축제가 이어진다.


김주원이 다시 전성기의 감성이 실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청순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이영철의 독무도 무게 있으면서 상쾌하게 이루어진다. 길게 열을 이룬 군무들이 함께 빠른 스텝을 이루며 즐겁게 회전하자, 지젤과 알브레히트도 합류하여 경쾌한 느낌을 이루고 있다. 이 분위기 속에서 둘이가 서로 안으려고 하자 다시 힐라리온이 나타나 불같이 화를 내며 둘이를 띄워놓는다. 그리고 헛간에서 알브레히트가 감추어 둔 긴 칼을 들고 나온다.


극 전개의 모든 것은 치밀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다시 귀족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알브레히트가 귀족 약혼녀 바틸드(유난희)와 만나자, 놀라고 상심한 지젤이 쓰러진다.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운 출연자 모두들이 얼어붙는다. 이제 머리를 풀어 헤친 김주원이 무대를 혼자 움직이며 찢어지는 슬픔을 가만히 표현하고 있다. 계속 ‘지젤’을 보고 있는데도, 또 평자의 가슴이 메고 있다.


이때 이영철의 괴로워하는 모습도 표현력 있다. 김주원이 실성해 죽어가는 지젤의 연기를 완벽하게 이루고 있고, 객석에는 깊은 감동의 전율이 흐르면서 큰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 2막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어둠 속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암울하기만하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힐라리온이 들어서 지젤의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은 다음 사라진다. 이때 미르타(솔리스트 김지영)가 나타나 부레부레 움직임을 신비롭게 이루고 있다.


애잔한 울림을 남기는 진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감미로운 하프의 연주와 함께 이루어지고, 미르타의 움직임이 허공을 난무한다. 다시 ‘사랑하는 남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은 처녀들의 영혼’인 윌리들이 무대 좌우에서 등장하고 숨 막히는 움직임을 이루어 나간다. 함께 앉아서 두 팔을 라운드로 모아 몸을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은 객석을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좌우로 사라졌던 군무들이 다시 좌우에서 나타나 백색 로맨틱 튀튀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는 아라베스크 룰루베 동작을 서로 교차하며 이루고 있다. 무대에 또 다른 감동의 전율이 무섭게 흐르고 있고, 객석에서는 감동의 큰 박수가 이루어지며, 우리 클래식발레의 전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팔을 라운드한 자세로 군무들이 멈추자 다시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던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오고 있다.


오늘 군무는 더 좋다. 다시 애잔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서(지휘자 정치용의 섬세하고 정교한 비트 속에 이루어진 이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뛰어 났다) 가슴에 흰 꽃을 한 아름 든 검정 망토의 이영철이 나타나 지젤의 무덤 앞에서 가만히 무릎 꿇고 기도한다. 이 때 지젤이 나타나 스치듯이 사라진다. 다시 일어선 이영철이 기품 있는 자태를 이루며 숨 막히는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이끌어가고 있다.


바로 그 옆에서 김주원이 환상적인 아라베스크를 허공에 눈이 부시게 펼쳐 올리고 있다. 서구의 무용미학자들은 흔히 같은 아라베스크 동작이라 하더라도 기쁨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슬픔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 김주원의 아라베스크는 분명히 슬픔을 표현하는 아라베스크가 맞다. 이영철이 김주원을 하늘 높이 리프팅한 다음 가만히 무대 바닥에 착지시키고 있다.


이 때 힐라리온이 나타나고 윌리들에 의해 죽음의 길로 인도되고 있다. 윌리들이 3명씩 열을 이루어 대각선 그랑주떼를 앙증맞게 이루며 사라지는 모습도 이 작품 안무의 승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다시 지젤과 알브레히트가 함께 나타난다. 김주원의 아다지오 움직임이 맑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이영철의 허공 뚜랑네 움직임이 힘차고 기품 있게 이루어지자, 객석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다시 군무들의 움직임이 있은 다음, 이영철이 나타나 경이로운 앙트루샤를 반복하고 무대에 쓰러지고 있으며, 객석은 또 다시 깊은 감동의 전율에 빠지고 있다. 이때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윌리들이 두 팔을 허공에 들고 뒷걸음치면서 무대 후방으로 사라지고 있다. 다시 일어난 이영철이 김주원을 두 팔로 안아 수평으로 흔들며 스포팅하는 포즈를 이루기도 한다.


이제 정말 떠나야할 지젤이 무대 좌측으로 뒷걸음질 치며 사라지고, 이영철이 지젤의 무덤가에 쓰러지며 모든 것이 끝나고 있다. 객석의 큰 박수와 환호 속에 끝나고 있던 이날 공연은 ‘현대화된 고전(Contemporary Classic)’의 가장 진수를 보였다. 국립발레단의 이번 ‘지젤’ 공연을 전체적으로 볼 때도 작품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주역들의 개성이 작품에 묻어나 살아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아무래도 군무가 주역을 빛나게 하는 영향도 컷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발레는 군무는 엉망이었는데, 주역들만 적당히 하여 공연되던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국립발레단의 ‘지젤’에서는 주역들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개성 있는 연기에 빠져들 수 있게 하는 탄탄한 군무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주역 캐스팅들의 신구 조화가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기립박수의 분위기 속에(몇 분이 기립하여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사실은 관객 전체가 기립하여 박수를 쳤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 관객들은 아직도 점잖은 관객들이다) 마무리 되고 있던 이날 공연에서 특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은 국립발레단의 두 ‘고참’ 주역 김주원과 이영철의 감동적인 움직임의 연기들이었다. 평자는 그동안 클래식발레를 야구와 비교해 본적이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다.


국립발레단 주역이었던 김현웅의 공연 모습을 처음 보고, 아 우리나라도 이제 ‘4번 타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번 이영철의 공연 모습도 야구에 비교해 보고 싶다. 사실 그동안 이영철은 뛰어난 기량의 무용을 성실하게 해왔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무대에서 빛이 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무용의 ‘색깔’을 무대 위에 드러내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야구로 치면 잘 맞은 라이너성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만 가 계속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 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영철은 이날 공연에서 완벽한 움직임과 연기로, 마치 “나의 클래식발레의 색깔은 바로 이런 것이니 잘 보아 주십시오”하고 선언하듯이 하면서, 객석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는 히어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한 때 약간은 슬럼프에 빠져 있는 듯 하던 김주원도 이날 공연에서 다시 깨끗한 감성이 묻어나는 매혹적임 움직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김주원도 의미 없는 다른 장르에의 외도 등을 삼가고, 순수 클래식발레의 더욱 깊고 농익은 표현으로 자신의 명예로운 커리어를 마감해 나갔으면 한다.(송종건/월간 ‘무용과 오페라’ 발행인/ blog.chosun.com/sjk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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