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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인터뷰  
 
송종건  
 
2012-04-11  
 
<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신화’, 위대한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인터뷰 >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안무가’로 추앙받고 있는 러시아의 위대한 발레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와의 인터뷰가 어제(2012년 4월 9일) 오전 11시 서초동 국립발레단 별관 사무실에서 있었다. 여기서 잠시 우리 ‘20세기 발레의 영웅’인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약력을 보자(이 약력은 이날 국립발레단이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1927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학교를 졸업한 후 마린스키 극장의 키로프발레단에 솔리스트로 입단한다. 이곳에서 유리는 그의 나이 30세이던 1957년에 그의 첫 대작 발레 작품 <석화(The Stone Flower)>를 발표하여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그 이후 1964년 37살의 젊은 나이로 러시아 모스코바에 있는 볼쇼이발레단의 예술감독이 된 그는 1995년 퇴임할 때까지 약 33년 동안 볼쇼이발레단의 수장으로 있으며, 20세기 후반 러시아 클래식발레의 발전을 주도한다. 이바노프, 포킨, 발란신,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러시아의 위대한 발레 안무가의 계보를 현 시대까지 이어오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평자는 약 열흘 전 이번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을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공연의 지도를 위해 내한할 예정이던 유리의 인터뷰를 국립발레단 측에 타진해 보았다. 4월 9일에 두 세 명의 일간지 기자들과 함께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따라서 평자는 평소 때 궁금했던 10여개의 질문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 보니 생각 보다 많은 칠 팔 명의 기자들이 와있었다.

따라서 직감적으로 평자가 준비해 간 질문을 모두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래 중요한 질문 몇 개라도 잘 물어보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러면 내 질문이 너무 공격적이 되어 - 이 경우 연결시켜 준비해간 질문들의 앞뒤를 모두 잘라버리게 된다 - 이 위대한 안무가에 대한 예의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데 하는 걱정도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고 있는데, 국립발레단 최태지단장의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해주셨으면 한다”는 취지의 인사말이 있다. 그런데 이 인사말 중에 유리 선생이 어제 한국에 오셨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 모스코바와 한국 서울의 시차를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에는, 정말 피곤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927년 생으로 현재 연세가 85세나 된다.

그래서 그런지 표정이 약간 피곤하신 것 같이 보이기도 하여,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씩 유럽에 갔다 오면 시차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첫 질문 순서가 되고, 바로 질문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평자가 먼저 질문하기로 했다. 우선 준비해온 질문 중 하나를 던진다.

- 현 시대 최고의 위대한 안무가이신데, 선생님의 안무 방식은 어떻게 됩니까? (사실 이 질문은 집에서 준비할 때도 너무 광범위한 대답이 있을 수 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평자는 스스로 질문의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다음과 같은 부연 질문을 했다). 즉 무용움직임을 먼저 만드시는지요, 혹은 먼저 만들어진 음악에 움직임을 맞추어 나가시는지요.

“어떤 때는 음악을 먼저 듣고 안무를 하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무용움직임이나 안무 패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선행 작업’ - 즉 음악 듣기와 시나리오 읽기 - 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 ‘스파르타쿠스’의 안무는 다이내믹한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좋은 안무를 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볼쇼이 극장에서 안무를 할 때는 대부분이 작곡가와 함께 의논해가며 안무를 해나갑니다.(평자가 평소 때 생각해오던 ‘안무방식’과 비슷한 대답을 느리지만 또렷이 말씀하시고 계신다. 단지 이때 러시아어 통역이 이 섬세한 예술적 인터뷰의 모든 내용을 정확히 통역하고 있는지, 그래서 소중한 내용을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은 들었다).

- (내친김에 평자가 계속 질문을 한다). 저는 선생님의 안무 작품 ‘Swan Lake’나 ‘스파르타쿠스’ 등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호두까기인형’ 공연에서는, 왜 1막의 ‘눈송이왈츠’나 2막의 ‘꽃의 왈츠’에서, 일부 군무 무용수들에게(특히 남자무용수들) 긴 소도구 등을 들게 하여, 자유스러운 포드브라 움직임이 되지 못하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앞에서도 좀 거론해 두었지만, 사실 평자는 이 질문을 하면서 세계 최고의 안무가이신 유리 선생님이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을 적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질문의 요지가 정확하게 통역으로 전달되었는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리 선생께서 두 팔을 앞으로 직접 감싸면서, - 이 모습은 군무들이 소도구를 든 모습이며 유리 선생께서는 나의 질문의 요지는 파악하고 계시다는 것이 된다 - 다시 가만히 말씀해 나가신다).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명절입니다. 그 소중한 명절의 축하 분위기를 완벽히 이루려면 무용수들이 빛나는 소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축제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군무들에게 소도구를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왜 흔히 클래식발레 ‘호두까기인형’에서는 거의 모든 안무 버전들이 말 그대로 ‘인형’을 ‘호두까기인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살아 있는 작은 사람을 호두까기인형으로 사용하시는지요. 저 생각에는 동화적 낭만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클래식발레에 익숙하지 않은 통역이 나의 질문을 바로 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약간은 다른 부분을 건드리고 계셨다. 그런데 유리 선생님은 또 다른 중요한 말씀으로 평자에게 중요한 내용을 가르쳐 준다). 사실 쁘띠빠는 ‘호두까기인형’을 끝까지 완벽하게 안무하지 못했습니다. 발레 ‘호두까기인형’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었습니다. 저는 그 음악을 바탕으로 저만의 ‘호두까기인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아쉽게도 약간은 서로 핀트가 맞지 않는 질문과 대답이 된 것 같지만 - 평자가 다시 한 번 거의 확신하는데 이 ‘질문’과 ‘대답’을 완전히 소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통역’의 문제, 등 이었을 것이다 - , 이제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평자는 가능하면 더 이상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과 유리의 대답내용을 평자 나름대로 정리하여 적어본다).”

- 이 작품은 남성무용수들이 힘들 것 같습니다.

“스파르타쿠스라는 주인공 자체가 검투사이기 때문에 활동량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도 근본적으로는 ‘클래식발레’입니다. 주인공들의 애틋한 사랑의 장면 등이 함께 그려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내가 임의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사실’입니다. 저가 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발레를 만든 것입니다.”

- 최고의 장면은 어디이며, 어느 장면에 심혈을 기우렸습니까.

“귀족들과 노예들 사이의 갈등, 노예들의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 그리고 이를 억압하려는 귀족들의 모습, 등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프리기아와 스파르타쿠스의 사랑 등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모습도 함께 작품에 그려나갔습니다.”

-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문화예술계를 이끌고 오신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스럽다. 러시아 혁명 등 많은 사회변화를 겪어 오시면서, 많은 정치적 인물들과의 교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 들 중에 특히 러시아 문화예술에 영향을 많이 끼친 분들의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정치인이 아니고 예술인입니다. (그런데 이때 유리는 약간 이 질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저는 최근에 85회 생일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주는 최고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결코 정치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예술발전에 진력해온 것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즐겁게 (이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구소련 시대에도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현 정권에서나 구정권에서 모두 저의 ‘예술작업’에 대한 상을 수여한 것입니다.”

- 예술가들과 정치가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나라 정치가들도 예술가들을 ‘푸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자신의 예술적 신념과 주장에 따라, 자신의 예술작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만약 이념의 잣대로만 억지로 대고 본다면) 이번 ‘스파르타쿠스’ 같은 공연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저가 안무한 또 다른 작품인) ‘이반 대제’ 같은 작품은 ‘제국주의적’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의 인물 자체가 흥미로워 발레 창조에 나섰던 것입니다.(팔순의 세계적 위대한 안무가가, 아마도 비행기 시차 조정이 쉽지 않으실 텐데도,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차분하게 이끌어 가고 계신다).”

- 한국에 대한 소감과, 우리나라 발레에 대한 평가, 그리고 개선점 등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저의 작품 지도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 시내로 들어 올 때마다,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에 놀라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발레단을 ‘평가’하는 작업은 쉬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발레단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들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저는 그동안 언제나 한국의 국립발레단과의 작업은 행복했습니다.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최태지단장이 뛰어난 지도를 하여, 무용수들이 스스로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발레단이라는 것을 저는 무엇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작년 모스코바에서 있었던, 한러 합작 공연도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전문성이 높고, 부지런한 곳입니다. 이번 공연 ‘스파르타쿠스’만 보더라도 이 작품을 세계 어느 발레단이나 소화시켜 내지는 못합니다. 실력 있는 남자무용수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군무들의 능력도 뛰어나야 합니다. 바로 이 작품을 훌륭히 공연해 낼 수 있는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뛰어난 무용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선생님의 건강 유지 비결은 무엇입니까.

“(유리 선생님이 통역의 질문 내용을 듣자 말자, 인터뷰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덩달아 평자의 마음도 훨씬 더 편안해지고 있다). 발레는 젊은 사람들에 의해 무대 위에 오르는 예술입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항상 젊은 사람들과 일하며 저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답니다.(유리의 ‘재치 있는’ 이 대답에 인터뷰 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발레 ‘스파르타쿠스’ 초연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유리는 저는 1968년에 있었던 ‘스파르타쿠스’ 초연을 영원히 기억한다고 하면서, 이 초연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이어나가고 있었다).

- (그리고 다시 또 다른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 (스파르타쿠스) 작품을 한국의 국립발레단 등 몇 발레단 외에는 공연할 기회를 주지 않으시는지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또 유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유쾌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다른 발레단에서는 (저를) 초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직접 무대에 서신다면 가장 맡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지요.

“(유리는 다시 웃음을 띠며) 가장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자신 자식들 중에 누구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와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저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모두 소중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장면 하나하나는 서로 완벽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때쯤 이날 인터뷰 참가자들 거의 모두의 질문들이 이루어진 것 같아, 평자가 다시 꼭 하고 싶었던 질문 두 개를 던져 보았다). 위대한 예술창조자인 안무가들은 ‘태어나는’ 것입니까, 혹은 ‘길러지는’ 것입니까.

“(그런데 유리 선생은 ‘예술창조’에 대한 이 중요한 질문을 아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게 받아오셨던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이 한국 땅에서 받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진지한 대답을 해주고 계셨다). 안무가와 예술가는 모두 교육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능’은 교육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안무가나 작곡가 등이 대학 등에서 교육을 받아 음악이나 발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 내려준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최고의 안무가는 될 수가 없습니다.(정말 소중한 대답을 우리 세기의 전설적 예술창조자인 유리 선생께서 해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창조자는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교육이 함께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위대한 예술창조자가 나타나기를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 우리 한국에서도 이바노프, 포킨, 발란신, 그리고 선생님 같은 위대한 안무가가 탄생하려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까.

“완벽한 기초 전문교육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방금 저가 최고의 ‘예술창조자’는 하늘에서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재능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완벽한 기초교육이 일어나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안무가는 재능을 타고 나야 하지만 후천적 노력도 필수적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 국립발레단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확인해보니, 유리 선생님은 원래 약간은 ‘무뚝뚝한 분’이라고 하신다. 오늘은 정말 대답을 많이 하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평자의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지기도 한다. 괜히 비행기를 오래 타고 오셔서 피곤하실 수 있는 연로하신 분께 너무 성가신 질문을 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유리 선생님은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친절한 분이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평자가 ‘무용과 오페라’ 창간호를 드리며 인사를 하자, 정말 따뜻하게 평자를 맞아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자의 질문이 그냥 성가시게만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는 표정도 보여주신 것 같았다. 국립발레단 측의 도움으로 유리 선생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어제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이 도착했는데, 유리 선생님이 평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찍은 포즈가, 평자의 가슴에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위대한 안무가가 되려면 타고난 재능뿐 아니라 후천적 교육이 철저하게 함께 해야 된다는, 등등의 정말 ‘진리’ 같은 말씀만 들려주시고 계시던, 유리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예술의 전당 뜰로 내려오니, 그동안 4월이 되었는데도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훈훈한 미풍이 부는 ‘봄’이 와있었다.(송종건/월간 ‘무용과 오페라’ 발행인/ blog.chosun.com/sjk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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